골프 룰에 관한 테스트다. 어떤 선수는 15인치(38.1㎝)짜리 숏퍼터를 사용했고, 다른 선수는 60인치(152.4㎝)짜리 롱퍼터를 썼다. 누가 골프 규칙을 위반했을까. 정답은 15인치 퍼터를 사용한 선수다. 영국골프협회(R&A)와 미국골프협회(USGA)가 규정한 골프규칙에 따르면 18인치(45.72㎝)보다 짧은 퍼터를 사용할 수 없다. 긴 퍼터에는 제한이 없다.
새해 초반부터 퍼터 길이가 골프팬들에게 화제다.
신장 180㎝로 장신이면서 미국 PGA서 가장 멀리 날리는 `괴물 장타자` 로버트 개리거스(미국)가 28인치(71.12㎝)짜리 난쟁이 퍼터로 시즌 개막전인 현대 챔피언스 오브 토너먼트에서 준우승했기 때문이다. 우승한 조너선 버드보다 더 조명을 받았다.
10일(한국시간) 미국 하와이주 마우이섬 카팔루아 골프장 플랜테이션코스(파73ㆍ7411야드)에서 열린 대회 최종일 개리거스는 합계 24언더파 268타로 버드(미국)와 공동 선두로 경기를 끝냈지만 연장 두 번째 홀에서 패해 우승컵을 놓쳤다.
개리거스는 작년 시즌 마지막 대회인 칠드런스 미러클 네트워크 클래식에서 우승한 데 이어 이번에 준우승을 차지해 새로운 돌풍을 예고했다.
장신들이 즐비한 PGA 투어지만 의외로 숏퍼터 예찬론자들이 많다. 개리거스는 대표적인 선수다. 타이거 우즈의 딸 샘에게 현재 사용하는 것과 같은 길이의 퍼터를 선물하기도 했던 개리거스는 "어깨를 웅크리고 어드레스하기 때문에 손목을 쓰지 않고 어깨 턴 위주의 스윙을 할 수 있어 좋다"고 숏퍼터의 장점을 설명한다.
PGA 투어에서 5승을 거뒀던 켄 그린은 심지어 25인치(63.5㎝)짜리 퍼터를 사용해 화제가 됐다. 2006년 세계랭킹 10위까지 올랐던 데이비드 하웰은 185㎝의 장신임에도 32인치 퍼터를 사용했다. 보통 선수들은 34인치를 사용한다.
PGA 투어 7승에 빛나는 최경주(41ㆍSK텔레콤)도 32인치 퍼터를 쓴다. 숏퍼터의 장점은 나름대로 많다. 헤드 중심에 정확히 공을 맞힐 수 있다는 것은 최고 장점이다. 직선 운동에 가깝게 스윙할 수 있어 방향성이 좋다.
하지만 지나치게 앞으로 숙여 퍼팅하기 때문에 후반으로 갈수록 근육의 피로 누적으로 일관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거리 조절이 힘든 것도 숏퍼터의 단점 중 하나다.
롱퍼터의 대명사로 통하는 베른하르트 랑거나 비제이 싱, 김종덕도 처음에는 평범한 퍼터를 사용했다. 하지만 퍼팅 입스 등의 이유로 난조에 빠지면서 롱퍼터로 바꿔 성공한 선수들이다.
퍼팅 입스 때문에 골프 선수 생활을 접으려고 했던 랑거는 롱퍼터로 바꾸면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은 롱퍼터 예찬론자다.
롱퍼터 길이는 통상 50인치(127㎝) 내외다. 퍼터 끝을 턱이나 가슴 사이에 고정시켜 놓고 퍼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정교한 추운동을 가능하게 한다. 극도의 압박감 속에서 손이 떨려 퍼팅을 제대로 못하는 선수들에게는 `구세주`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1990년대 중반에는 롱퍼터를 사용하는 선수들이 급격하게 늘자 `골프의 재미를 반감시킨다`며 이를 제한하자는 의견도 대두됐다.
어니 엘스(남아공)는 예전에 "긴장과 퍼팅도 골프의 요소다. 몸에 고정을 하는 퍼터는 완벽한 스트로크를 할 수 있게 해 퍼팅을 쉽게 한다"고 반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워낙 롱퍼터가 널리 퍼진 탓에 지금은 이런 불만을 찾기 힘들다.
주말골퍼들이 퍼터를 고를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뭘까. 대부분 브랜드나 헤드 모양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길이ㆍ무게ㆍ로프트 등 여러 스펙 중 퍼팅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퍼터 길이다. 사실 적당한 퍼터의 길이는 골퍼에 따라 제각각이다. 신장과 평소 얼마나 어깨를 구부려 퍼팅하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고, 팔 길이에도 영향을 받는다.
통상 자신에게 맞는 퍼터 길이는 공이 바로 눈 아래에 위치하도록 편안하게 어드레스했을 때 손바닥 끝을 기준으로 그립이 0.5인치 남는 정도다.
국내 주말골퍼들은 대부분 34인치 퍼터를 사용한다. 장신이 많은 PGA 투어 선수들의 평균 퍼터 길이도 34인치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국내 주말골퍼들이 대체로 긴 퍼터를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퍼팅에서 중요한 것은 또 다른 게 있다. 잠시 현대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 현장으로 돌아가 보자. 개리거스는 연장 두 번째 홀에서 1ｍ도 채 되지 않는 파퍼팅을 남기고 있었다. 주말골퍼도 어렵지 않게 넣을 수 있는 거리였지만 개리거스는 천추의 한이 남을 실패를 경험했다.
이 순간 개리거스에게 필요했던 것은 짧은 퍼터가 아니라 압박감을 이길 수 있는 강심장이었다.
[오태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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